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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네 아빠로 살아남기/아빠의 일기

얼마나 간절하느냐가 결과를 바꿀 수 있다.

by 쪼꼬뎅이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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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전을 보며 느낀 감정. 간절함.

간절함


얼마 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32강전이 있었다.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너무 어이없고 쉽게 2점이나 줘서 포기는 하지 않았지만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지켜봤다. 근데 후반 58분에 조규성이 미끌어지듯 헤딩을 넣더니 61분에는 몸을 던지며 밀어넣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밀어넣는 모습에서 '간절함' 이라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겼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졌.잘.싸 라고 생각이 들었다.

날아서 골을 만들었고
미끌어지며 헤딩 타켓을 맞추었다.



선수들이 얼마나 점수에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우루과이를 잘 막았다 하지만 점수가 없었고, 앞으로 있을 포르투칼도 점수가 없을 수 있는데 여기선 분명 점수가 필요했다. 탈락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 했다라고 말하기엔 점수가 필요했다. 그 점수, 그게 간절함이었고 미끄러지면 넣고 달려와서 공중에 머리를 들이미는 노력이라는 과정을 거쳐 점수라는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기는 져도 좋은 경기라고 판단했다.

처음 가져 본 간절함.

고등학생때 공부를 하는데 유독 점수가 안 나왔다. 난 내신에 강하지도 않으면서 비교우위로 내신이 강한데 제도가 내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외면했고 결국 수능이 잘 나오질 않았다. (외면하면 결국 그 분야는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재테크를 배우면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족하지 않은 대학을 갔고 군대를 갔다가 편입학원을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간절함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 같다. 8/14 학원에 등록을 하고 첫 시험을 봤는데 영어시험이 32점이 나왔다. 그래서 아는 문제도 확인하며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선생님이 왜 너만 계속 오냐고 그럴 정도고 갔다. 그 점수는 10월까지 변함이 없었다. 될 것 같은데.... 되질 않는 것에 엄청 힘들었는데 그 점수가 11월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60점을 넘기 시작하더니 85점까지 나왔다. 그리고 편입시험에 들어가서 광운대 국문과는 92점까지 나왔었다. 물론... 광운대는 3명 모집에 예비 1번으로 탈락했고 그 해 편입은 예비 1번만 3개가 나오며 모두 탈락했다. 나의 편입 도전기는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 이번 월드컵에서도 어떤 선수가 구자철의 품에 안기며 될 것 같은데.. 하면서 우는 모습이 있는데 난 그 기분이 뭔지 알 것 같다. 저기 보이는데 가지 못하는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간절함을 순간 잊으며 살았다.

편입도 떨어진 사람이 무슨 의욕이 있었겠는가. 입사 준비를 했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를 들어왔다. 연일되는 야근에 좋은 대학을 나와도 진급이 안 되는 사례들을 보며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 때는 전년만큼 간절하게 시험 공부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험을 봤는데 이 때는 3곳 모두 합격했다. 어이가 없었는데 그렇게 대학과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8시 ~ 오후 6시까지 회사생활 / 오후 7시 ~ 밤 10시까지 학교 / 밤 11시 ~ 새벽 1시까지 복습 및 과제.
치열함과 간절함은 정작 편입을 하고 생겼다.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든 졸업하자 라는 마음 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왜냐고?

일하는데 당당하고 싶었다.


이게 나의 간절함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졸업한다는 것이 나의 간절함이자 목표였다. 그렇게 2009년 8월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정말 많이 운 것 같다. 남들은 쉽게 졸업하는 곳을 많이도 돌아왔다. 그러니 너무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생긴 간절함

비록 회사는 전문대 졸업자로 입사했지만 편입을 통해 4년제를 졸업했다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고 (회사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입사 후 2년이 지나니 진급도 4년제 졸업 입사자들과 동일한 위치가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대리 진급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원 3년차에 사업장을 옮겼는데 거기서 상사와 너무 안 맞았다. 맞추려고 노력은 했는데 계속 어긋났다. 그래서 그 해 전산 개선을 5개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과 D가 나왔고 그 다음 해에도 D가 나왔다. 마지막 해는 그 상사가 고과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어학성적이든 자격을 갖추어도 진급을 하지 못한다는 이상한 말을 해서 누락은 각오하고 회계 자격증을 공부해서 취득했다. 근데 영어성적이 되지 않는다 하여 능력과는 상관없이 고과 D를 준 것이다. C는 줘야 그 다음 해라도 살아날 것이 아닌가. 대리가 이렇게 힘든 곳인가 하는 마음과 간절함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연속 D가 나의 발목을 잡고 대리 진급은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누락하고 되었다. 그 때 나를 진급시켜 준 사람이 직장생활 17년 동안 나의 직위를 올려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내 직장생활에서 여러 면으로 배울 점이 많은 상사였고 지금까지 감사하는 상사이다.

너 진급시킨 것만으로도 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과장의 진급 때도 마찬가지였다. 3년차에 이상한 상사를 만났는데 유독 나를 괴롭혔고 결국 자기와 연관되지 않게 업무를 다 배제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니 고과가 잘 나올리가 있나. 내가 다니는 회사는 진급하면 다른 사람 진급시켜야 하니 D를 자연스럽게 주는데 1년차과 3년차에 D가 생기니 첫 해 진급이 되나. 안 되지. 그렇게 1년을 누락하고. 2년차 진급 때 법인 이동을 하였다. 신설법인을 세웠는데 사람이 없다며 네 번이나 전화가 왔고 결국 수락했는데 그 과정에서 진급을 최소화해서 두 번 누락을 했다. 그리고 작년이 세 번째 였는데 이번 진급 경쟁자들은 모두 경력직이었다. 근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력직은 진급 프리패스권이 있다더라. 그래서 세 번이나 누락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한 가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 곳에 간절함을 갖지 말자.

역시 내 편은 가족 뿐이다.

그러고 나니 내가 이룰 수 있는, 통제권 내에 있는 것은 가정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공부하냐에 따라, 내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가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심지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부자는 돈을 물려주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시스템을 물려준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내가 얼마나 많이 공부하냐에 따라, 내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만 정치 등 변수들로 인해 그 모든 것이 안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재테크를 더 열심히 공부했고 아이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은 초보 단계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공부했고 나아가는 중이다.

회사는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수단이 될 수 없는 더 본질적인 가치이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간절함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아니다. 본인이 간절함을 가지고 해 나가는데 수단으로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하면 할 수 있는 것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세상의 편견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또한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로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도 있다. 대학에서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와 몸으로 부딪히며 힘들게 배워야 한다. 공부를 통해 통제 가능한 것들을 점차 늘려나가며 본인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았으면 싶다.

통제 가능한 것에 대한 경지를 넓히는 것.
그리고 그 경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을 위해 아이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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